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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Youn
Woongjin junior
2021

인연을 따라가는 어느 가족 이야기, 수연
‘스타일로만 기억되기보다 철학을 가진 작업으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 소윤경이 또 한 편의 분신 같은 이야기를 내놓았다. 인간의 위선과 문명의 진화,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 사이, 그녀를 둘러싼 다양한 ‘콤비’들 속에서 충돌하고 열망하며 낳은 이번 이야기의 키워드는 ‘가족’이다.
새롭게 둥지 튼 집에서 시작된 형체 없는 소녀와의 다발적인 만남, 소녀의 이야기이자 작가의 과거일 수 있는 가족의 잔상이 ‘장화홍련’이라는 옛이야기의 틀을 입고 오늘의 독자 곁에 찾아온 것이다.
『수연』은 생명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정해져 있던 가족의 굴레, 그리고 새로이 가족의 이름으로 맺어진 인연에 이르기까지, 관계와 역할로 얽히고 설킨 한 가족의 서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맺은 인연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
시간이 허락한 순간순간, 우리의 선택이 인연의 끈을 잇기도, 풀기도 하는 걸까, 아바타처럼 각자 인연이라는 정해진 실타래 안을 수없이 배회하며 사는 걸까. 『수연』은 촘촘하게 짜여진 가족 서사 안에서 여러 가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이다.

‘우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빠와 새로운 엄마, 자매와 새로운 동생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은 가족이 되었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한 울타리에서 삶을 나누기 시작한다. 내 입장에서 보고자 하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와 간극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때로는 그 간극이 현실이 되어 오해를 낳고 감정의 골을 만들 때가 있다. 새로운 동생이 맞이한 비극은 자매의 의도적 행동일까, 실수일까, 그저 자매도 갑작스럽게 당해야 했던 사고일까?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시작된 이 가족의 엇갈린 마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극한으로 치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누군가의 가슴에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동시에 희미해진 기억으로,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삶의 파편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절대 잊힐 수 없는 각인처럼 평생 끌어안을 시간들. 『수연』은 가족 안에서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고통받는 모든 영혼들을 향한 위로의 손 편지다.

수억의 연필선으로 만들어 낸 시간의 깊이
내밀한 기억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예술이 되기까지
소윤경 작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낯설고도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를 펼쳐 보여 주는 『호텔 파라다이스』, 우리와 우리가 먹는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에 주목한 『레스토랑 sal』, 인간과 비인류 생명체 간의 연대와 공존을 한껏 표현한 『콤비』에 이어, 기저의 내밀한 기억을 더듬어 『수연』을 끌어올렸다. 잔상이 또렷해질 때까지 가녀린 연필선을 긋고 또 긋는 치열함이 허공을 울리는 순간, 인물과 배경은 각자의 자리에서 강렬하게 살아 움직이고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열 마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수연』의 치명적인 매력은 그림책을 또 한 편의 예술의 경지로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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