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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그리다> 우리 가족입니다 2015.09.20_한국일보


이혜란 지음 · 보림 발행ㆍ30쪽ㆍ9,000원

명절 때면 병든 부모부양이나 재산 분배 등의 문제로 형제간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재산을 상속받기만 하고 봉양하지 않는 자식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부모도 늘고 있다. 부모가 남겨주는 것이 사랑뿐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금은 타인처럼 주고 받는 것이 공평해야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평화로울 수 있는 시대다. 어린 시절 경험이나 가족사는 작가들에게 창작의 모티브가 되어 준다. 이혜란 작가의 어린 시절로 함께 여행해 보자.

소녀의 가족은 작은 중국식당을 꾸려가는 부모님과 남동생, 이렇게 네 식구였다. 어느 날 웬 할머니가 찾아온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낳았지만 키우지 않았다고 했다. 치매를 앓게 되자 혈육인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네 식구가 살기에도 비좁은 식당 한 켠의 살림방에서 이제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까지 같이 살게 되니 매일 매일이 전쟁이다. 할머니는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했다. 어느 날은 장롱 속에 젓갈을 넣어두어 구더기가 들끓게 하기도 했다. 식당 손님들 앞에서 아무 때나 옷을 훌렁 벗어버리기도 했다.

그림책의 한쪽 편에서 소녀는 내내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짜증이 나서 말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맞은 편 페이지에는 묵묵히 할머니를 씻기고 더러워진 옷과 이불을 빨고 있는 부모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길거리에 누워 잠든 할머니를 업고 돌아온 아버지의 뒷모습은 마치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버티고 서있는 것 같다. 이 장면과 대조적으로 비록 한쪽 발을 바닥에 몰래(?) 살짝 딛긴 했지만, 소녀의 작은 등에 업힌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가족이란 이렇게 서로를 등에 업고 가는 존재일 것이다. “부모인데 우짤끼고….” 아버지의 말 한마디는 답답하리만치 착하다.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굳이 떼어내고 싶지도 않은 삶의 그림자, 가족이다.

할머니가 식당 손님들 앞에서 훌렁 옷을 벗어버리는 등 식구들을 연신 난감하게 만들었지만

가족들은 그녀를 품어 안는다.

보림 제공

이혜란 작가는 수없이 많은 습작을 거쳐 연필선 위에 수채화를 담담하게 입혀냈다. 작은 중국 식당 안의 뜨겁고 얼큰한 음식 냄새, 그리고 부모의 시큰한 땀냄새가 종이에 얼룩처럼 깊이 배어있다.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 사람의 도리를 믿고 살아가는 우직함. 그 시절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말없이 가르쳤던 삶의 태도였다. 해지는 저녁, 허기처럼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부모와 할머니, 어린 형제들이 둘러앉은 비좁은 밥상이 그립다.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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