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불온한 세상
[절망의 즉흥성] 1997. 캔버스에 유채. 90 x 72 cm
한 드라마의 재벌 아들이 호젓하게 읽고 있던 한 권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누구는 명품 옷이 즐비한 드레스 룸을 갖는가 하면 누구는 흙으로 만든 쿠키로 배고픔을 견디다 ‘아사(餓死)’하고, 소를 비롯한 가축들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생태계의 원리를 뒤집는 끔찍한 사육에 시달리고, 신자유주의의 가파른 경쟁 속에서 잔뜩 위축된 개인들은 친구의 성공에 저도 모르게 심사가 뒤틀린다. 소윤경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불온한 물음표를 던진다. 세상이 과연 정의나 선의로 움직이는가. 이 불온한 세계 속에서 안간힘 쓰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간성은 과연 멀쩡할 수 있을까. 소윤경은 꽁꽁 싸매두었던, 애써 회피하고 싶었던 우리 안의 부조리함이나 상처, 폭력성을 건드린다. 정신병동 같은 공간에 처연히 해체된 인간들의 모습은,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현대인들의 병든 속내에 대한 은유다. 그의 그림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사람은 거짓말에는 상처받지 않는다”는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의 말처럼 그의 그림이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들의 병든 속내
[욕조의 시간] 1996. 캔버스에 유채. 116 x 90 cm
성한 데 없이 잘려나간 신체들, 호흡기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 피 흘리는 섬뜩한 눈빛들. 이처럼 소윤경의 그림은 그로데스크한 오브제들과 온화한 파스텔톤이라는 상반된 조화 속에서 비현실적인 듯, 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저는 인간 내면의 잔혹한 심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자기파괴본능, 가학과 피학의 구도, 육식을 위한 동물 공장 등 인간의 일상이라는 표면 밑에 감춰진 잔혹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기묘한 판타지로 표현되지요.”
그에게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행복 앞에서 질투심을 느끼고, 또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행복해”라며 안도하는 게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 아닌가요.” 그의 반문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헌데 그는 왜 이 불온한 인간 심리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전 여자이고, 작았으니까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사회적 약자의 시선, 그 또한 소윤경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알리바이다.
소통하는 미술
소윤경에게 창작 의욕을 끌어당기는 ‘잔혹한 인간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짐작컨대 ‘소통’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의 모든 표현 욕구는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심지어 갤러리에서 팔린 자신의 그림을 부랴부랴 되찾아오기도 했던 그다. “한 개인이 소장해서 집 안에 갇히는 미술은 원치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예술이 아닌, 다사다난한 삶의 일상성과 호흡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 속에서 소윤경의 착한 고집과 진정성이 느껴진다.
‘화가’ 소리를 들으며 회화를 그렸던 소윤경이 일러스트 계에 들어선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저는 소통이 되는 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구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겐 일러스트레이션은 가까운 영역이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지만 소윤경은 그곳에서 새로운 컨셉에만 집착하는 현대미술의 미궁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텅 빈 퐁피두 센터 지하에서 열리는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 공연’을 보면서 이곳을 떠나야겠구나 결심을 했죠.”
[난 쥐다] 2010. 본문그림. 문학동네
포스트 386세대인 소윤경은 지금과 같은 일러스트 붐이 일기 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자기 길을 개척했던 초기 세대다. 워낙 초기라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비롯된 의도치 않은 무례함도 그가 겪었던 애로사항 중 하나. 이를 테면 “손가락이 왜 다섯 개가 아니죠?”, “물감자국을 내지 말라”와 같은 다소 황당한 ‘지적질’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출판환경이 좋아졌고, 소윤경이 일러스트를 그린 [난 쥐다], [거짓말 학교]의 전성희와 같은 독특한 작가의 등장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담은 소윤경의 그림은 이 세계에선 설득해야 할, 타협해야 할 장벽들이 많다. 어떤 경우 그림의 주제라 할 수 있는 드로잉은 덜어내고, 색감만 추려내는 타협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해괴한 그림체와 도발적인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읽히며 아이들의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무난하고, 예쁘고, 착한 그림’이 선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학부모들이 책을 고르다보니 그런 타협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러한 풍토 속에서 작업하면서 겪은 소윤경만의 고충은 미래의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가장 정직한 충고가 될 것이다. “작가주의를 고수한다면 개인 작업에 치중하며 경제적 궁핍에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끊임없이 작업의뢰를 받고 금전적 보상을 원한다면 그만큼 유동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능해야 하고요.”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냉철한 지적 하나를 더 들려준다. “파인 아트를 하다가 이쪽으로 넘어올 경우, 자기 스타일대로만 주장하면 힘들어요. 시스템 안에 섞여 겸손하게 일하면서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소통의 장조차 열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존재한다
[왕년에 잘나갔던 사람] 1998. 종이에 콘테. 76 x 115 cm
여태껏 한 일 중에서 가장 뿌듯한 일로 여행을 꼽는 소윤경은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지내는 노마드족이다. 그림도 정해진 곳에서 그리지 않는다. 색연필, 펜, 마카펜만 들고 시골의 어느 도서관이나 정독 도서관 같은 곳으로 후다닥 달려가기도 하는데, ‘공간 이동’의 힘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꽉 막혀 있던 그림이 단숨에 그려지기도 한단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낯선 환기는 소윤경의 특급 활력소인 셈이다.월드컵 경기장 부근에 있는 소윤경의 작업실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독특한 비밀 하나를 품고 있다.
“고물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남들이 버린 것에 애착이 많아요. 이 집에 있는 것들도 모두 버려진 것들이죠.” 그 집의 인테리어를 도맡고 있는 텔레비전, 의자, 화장대, 선반들 모두가 그 아파트의 주민들이 버린 것이다. ‘인간의 잔혹한 내면’에 관심이 많은 그라지만,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들에게 마음을 쏟는 모습에서 도리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거북이 ‘떡붕이’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떡붕이가 풀숲으로 사라졌는데 그 슬픔 때문에 작업을 한동안 중단하기도 했던 그다. 짐작하건대 그는 타인의 아픔에 누구보다 민감한, 눈물도 많고, 가슴도 뜨거운 사람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관객이 누구였냐고 물었다. 그는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자신의 그림을 관람했던 어린이들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쓴 독후감을 읽었는데, 제 그림에만 관심을 갖더래요. 근데 그 반응이 ‘이 그림 그린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라는 거였죠.” 그리곤 소윤경은 그 반응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기분이 좋았어요.” 세상에는 그런 ‘미친’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솔직하게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날, 한국의 일러스트 계와 그림책 세계에 활력이 샘솟지 않을까. 그것은 소윤경과 같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볼 권리가 있는 독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때에서만이, 비로소 작가와 독자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
[해피의집] 1999. 종이에수채, 연필. 75 x 50 cm
[검은침대 I] 2000. 종이에 아크릴. 75 x 50 cm
[검은 침대 II] 1999. 종이에 꼴라쥬. 75 x 50 cm
[나를조롱하지마라] 2000. 종이에꼴라쥬. 117 X 75 cm
[전기구이] 2000. 종이에 아크릴, 콘테. 75 X 117 cm
[네이버 지식백과] 이토록 불온한 세상 - 소윤경 (한국의 일러스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