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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라

긴 소개 부탁드릴께요.

저는 베이비붐 세대의 돼지띠로 태어나 늘 지독한 경쟁속에 살고 있고 미래의 심각한 노인문제의 주역이 될 세대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무척 불행해 보이지만 실은 그 경쟁 속에서 그다지 뒤쳐지지 않고 순조롭게 살아온 편이죠.하하.

저는 화가이고 일러스트레이터이고 대학강사도 합니다. 떡붕이라고 하는 예쁜 거북이와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 살지요.

지금은 출판 미술에 많은 노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작업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엔 순수 미술 전공자들이 돈벌이를 생각해서 시작하듯 저도 졸업 후 포트폴리오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어요.

그 당시만해도 내 그림을 좋게 받아주고 일을 주는 출판사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어요.

IMF 이후 아동 출판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팽창되어 저도 유학 후 천천히 일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

저처럼 구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겐 일러스트레이션은 늘 가장 가까운 영역이라고 느끼게 되요.

그리고 늘 미술사 속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은 화가의 대중적 소통을 위한 표현의 중요한 영역이었지요.

우리나라는 유달리 일러스트레이션을 다른 영역으로 분리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고급미술과 대중미술을 경계 지으려고 하는 인식이 잔재해서라고 봅니다.

자신이 만든 그림책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건가요?

아직은 없습니다. 그림책은 내러티브를 중요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처럼 한 장면의 그림으로 말하는 화가에게는 고된 공부와 내공이 필요한 장르지요.

동시에 문학성과 연출력등 종합적인 능력이 필요한 만큼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앞으로 글과 그림을 모두를 창작한 그림책을 서서히 만들어 갈 계획이예요.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있다면요?

우선 좋은 점은 대중과의 소통이겠지요.

계약이 이루어지고 출판이 된 후 사후 처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대중들이 그 책을 사게 되면서 발생하는 인세가 고스란히 수입으로 돌아옵니다.

무언가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소속감과 노동의 대가를 받는 기쁨, 그리고 일반인들이 책을 보고 올리는 리뷰를 보게 되면 그들과의 소통이 무척 신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요.

하지만 대중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만큼 표현의 자유가 다소 제한 되는 면이 없지 않아요. 특히 저같이 처참하고 잔혹한 인간심리를 표현하길 좋아하는 작가는 부딪히는 벽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림책은 부모들이 사주는 경우가 대다수라 안정적인 표현을 선호하고, 편집자와 영업부 마케팅의 태클이 만만치 않지요, 결국 출판사가 결정하고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열이 늘 따라다닙니다.

유학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디에 가셨고, 무엇을 배웠고, 어떤 걸 남기고 오셨나요?

저는 사실 ‘사는게 지루해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프랑스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작업실에 박혀 박쥐처럼 지내는 생활이 답답하고 희망없어 보이던 시절을 맞게 된 것이지요.

다행히 작업실 보증금을 빼 들고 유학길에 올랐는데 바로 IMFR가 터져 저의 프랑스 생활은 그야말로 빈곤과 혼돈의 연속이었지요.

하지만 빠리에서 학비와 집세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고 좋은 전시를 맘껏 볼 수 있어 나름대로 정신적 풍요속에 지낼 수 있었어요.

딱히 공부를 했다기 보다 다른 정신구조를 가진 세계속에서 뇌가 한번 확 뒤집혀 반대로 돌아가며 지내다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대 미술이 지나치게 새로운 컵셉에만 집착하며 알 수 없는 미궁속으로 빨려 들어가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는 모습을 보았지요.

텅 빈 퐁피두 센터 지하의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 공연’을 보면서 저는 돌아올 결심을 했어요.

반려자 소개좀 해주세요. 떡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떡붕이를 만난 건 12년 전 모래네 시장에서지요.

저는 그 근처 기찻길 옆에 작업실이 있어 봄나물을 사러 갔다가 생선가게에서 커다란 대야에서 바글거리는 무언가를 보게 되었어요.

첨엔 게장 담궈 먹는 건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가 청거북이라 하시더군요.

한마리를 천원 주고 사왔는데 이 동전만한 거북이가 하는 깜찍한 짓에 저는 그냥 반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거북이는 무척 민첩하고 영리한 동물이예요.주인도 알아보고 눈치도 빠르고 감정 표현도 잘하죠.

‘떡붕이’는 밥을 먹을 때 나는 소리로 지어준 이름이랍니다.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엔 무얼 하시나요?

떡붕이를 배에 올려놓고 누워서 책을 보거나, 요리를 해먹거나, 자전거로 한강변을 산책합니다.

불면증과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꾸준히 운동을 하는 편이죠. 요즘은 헬스크럽에 다녀요.

개인적으로 2001년도의 페인팅 작업보다는 예전 작업을 더 좋아하는데요, 2001년도 작업의 해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2001년도 작업은 제 그림들 중 유일하게 하나의 컵셉에 맞춘 의도된 인물화들이예요.

불멸한 20세기의 인물들이 사후세계에서 현재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는 다소 엉뚱한 설정이었죠.

우리가 꿈이라고 믿는 불멸하는 삶에 대한 경외스러움이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그들에게 묻고 싶었죠.

하지만 늘 내 일상의 집요함속에서 구상을 떠올리던 개인사적 그림들이 늘 더 좋은 반응을 불러오는 걸 보면 제게 좋은 그림을 그리는 원천은 역시 머리가 아니라 지독한 감정인가 봅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것 같던데,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요.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난 인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당시 저는 21세였고 친구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45일 가량을 인도에서 여행했죠.

모든 것이 너무도 놀랍고 경이로웠어요.

어딜 가나 조그만 동양여자애 둘이서 다니면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어요.

한번은 북부행 기차를 잘못 타52시간 동안 은하철도 999가 된 적도 있었죠.

텅 빈 기차를 타고 끝도 없이 달리고 달려도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와 한밤중 군인들이 겨룬 총부리에 잠을 깨서 보니 국경 근처를 통과하고 있었죠.

그 당시 인도는 종교분쟁이 심해 우리는 총알이 날리는 곳에서 날뛰고 도망치기도 했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작가님에게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림은 저의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많은 시간 그림을 그리면서 나 자신과의 소통과 위안이 되어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생존이 된 지금 나의 그림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도 느꼈을 세계를 대변해주는 표현의 한 수단이지요.

관람자나 독자가 없는 그림은 제겐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말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상처가 보여요. 잊고 싶거나 잊기 싫은 기억이 있나요?

아마도 파리에서의 외로움의 기억들이 제겐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던 듯싶습니다.

사회적 안전장치도 없이 이방인으로 살아 가야 는 삶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소외가 지금도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이 자기 문제로 돌아와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상황이죠.

그러나 저는 대체로 밝고 해학적인 사람이고 유독 아픈 세계를 그리는 것에서 창의력이 발휘되더군요.

제일 행복 할 때는 언제인가요?

제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에 많은 관객이 열심히 그림 감상을 하고 있을 때,

내가 그린 그림책이 많은 인쇄부수를 올릴 때, 힘들게 그림을 마감하고 비행기 타고 먼 나라로 휭 하니 떠날 때..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으신가요?

좋은 화가이자 멋진 일러스트레이터.

드로잉 작업이 너무 멋져요. 작업을 하실 때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즉석에서 그리나요? 어디다 그리고 보관은 어떻게 하나요?

드로잉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파리에서의 빈곤으로, 가장 저렴한 재료인 종이와 연필과 잡지와 수채 물감을 선택하게 되었지요.

당시 비좁은 스튜디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보관과 이동의 편리함이 드로잉의 장점이었어요.

갱지를 드로잉들 사이에 끼워 말아 보관하면 공간도 많이 차지 하지 않죠.

하지만 지금은 전시와 함께 액자를 해두어 캔버스보다 더 많은 공간과 무게를 지니게 됐어요.

가학과 피학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

전혀요. 다만 육체적, 사회적 약자라고 느낄 때 드는 자괴감과 분노를 표현한 그림이 많이 있어서 인가 봅니다.

한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평가와 대우가 따르죠. 국가, 인종 , 성별, 나이, 외모, 능력 등등..

그 속에서 처참한 기분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며 살지 않을 수 없는 사회쟎아요.

또한 길들여진 육식으로 대량 사육된 동물들을 먹어야 하는 잔혹함도 어쩔 수 없는 피학의 구조에 해당하죠.

그림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사람의 마음을 통과해서 보여지는 소주 한잔의 위로. 그러나 역시 재미난 것으로 가득한 세계

꿈을 알고 싶어요.

떡붕이에게 연못이 있는 집으로 이사가게 해주고, 꽃나무도 많이 심고, 착한 남자와 함께 세상구석 여행 다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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