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돼지 이야기 2016.07.16_한국일보


눈 내리는 겨울 밤, 포크레인이 눈송이처럼 많은 생명을 검은 구멍 안으로 몰아 넣는다. 이야기꽃 제공


돼지 이야기

유리 글, 그림

이야기꽃 발행ㆍ40쪽ㆍ1만3,500원


아스팔트마저 녹아 내릴 듯 더운 여름 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옆 차선에 트럭 한 대가 나란히 선다. 화물칸을 보니 층층이 비좁은 철창 안에 닭들이 빼곡하다. 초복이 코앞이다. 달아오른 철창 속에서 닭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 실신 상태이다. 그나마 가장 자리에 있던 닭들은 마지막 세상구경이라도 했을까? 꽃잎처럼 깃털들이 도로 위에 휘날린다. 트럭이 속도를 낸다. 차를 달려 약속 장소에 가보니 먼저 온 친구들이 치킨과 맥주를 시켜 놓았다.

‘돼지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떠올리기 싫은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2010년 겨울, 살처분된 돼지들의 생생한 보고서이다.

어미돼지는 분만사에 누워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쇠틀이 몸을 누르고 있어 제 새끼조차 맘껏 핥아줄 수도 없다. 3주 후, 어미는 새끼들과 분리되어 또다시 인공임신을 하러 사육틀로 끌려 나간다. 생이별 속 어미의 눈빛이 애절하다. 번식용 암컷들 외에 나머지 새끼 돼지들은 6개월 후 도축장으로 보내질 것이다. ‘고기’가 될 운명이다.

어느 눈 내리던 겨울 밤, 돼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기봉과 몽둥이로 축사 밖으로 내쫓긴다. 앞마당엔 커다랗고 검은 구멍이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들을 삼켜대고 있었다. 마지막 세상 구경에 분주한 돼지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한 포크레인들이 돼지들을 목적지로 재촉한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어미가 새끼와 재회한다. 황망하고 불안한 눈빛들이 마주친다. 그 겨울, 눈송이처럼 많은 생명들이, 땅 속으로 스몄다. 파이프를 꽂은 검은 구멍도 그날 이후로,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돼지들이 사는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돼지들보다도 더 살찐 도시를 먹여 살리기 위한 공장은 멈출 수가 없다. 동물들의 희생에 대해 인간이 치러야 할 몫은 얼마일까? 유리 작가는 말한다. 돼지들도 인간들과 같은 생명의 무게를 지녔지 않느냐고.

마지막 페이지를 차마 덮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돼지들의 눈빛들마저 덮일까 싶어서.

소윤경 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