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텅 빈 냉장고 2016.04.01_한국일보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맛있는 음식이 되듯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는 한층 따뜻하고 풍성하다. 한솔수북 제공


텅 빈 냉장고

가에탕 도레뮈스 글ㆍ그림, 박상은 옮김

한솔수북 발행ㆍ32쪽ㆍ1만1,000원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들어선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마땅한 찬거리가 없다. 밥을 짓기도 귀찮다. 라면을 끊여 TV 앞에 앉는다. ‘먹방’이 화면을 점령하고 있다. 영상 속 군침 도는 음식과는 대조적으로 현실의 식탁은 초라하기만 하다. 도시에 사는 독신들의 평범한 저녁 풍경이다.

‘텅 빈 냉장고’는 최근에 나온 프랑스 그림책이다. 사각형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이 마치, 냉장고 안을 층층이 들여다보는 것 같다.

허기진 저녁, 모두들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장을 보지 못했다. 거리의 악사인 앙드레이 할아버지에게는 말라빠진 당근 세 개가 전부다. 할아버지는 아파트 이층집에 사는 나빌 아저씨네 문을 두드린다. 아저씨도 마침 달걀 두 개와 치즈 한 조각으로 무얼 해먹을까 궁리하던 참이었다. 둘은 삼층에 올라가보기로 한다. 아이 둘을 키우는 산드로 부부는 피망과 쪽파를 가지고 있다. 다 같이 재료를 들고 사층에 올라가본다. 클레르 아가씨는 토마토를 내놓았다. 드디어 맨 꼭대기 층, 로잔 할머니는 버터와 우유, 밀가루를 꺼냈다. 더 올라갈 층이 없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결국 가져온 재료들로 만족하며 모두들 궁리 끝에 함께 파이를 만들기로 한다. 그런데 베란다로 나가보니 놀랄만한 광경이 펼쳐진다.

독신가구의 비중이 높은 일본에서는 컬렉티브 하우스(Collectivehouse) 라는 개념의 주거 형태가 생겨났다. 개인적인 삶을 방해 받지 않으면서도 거주자들이 함께 식사나 모임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공동주택인 것이다. 당번을 정해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함으로써 외로움과 고립감을 덜어낸다. 혼자이고 싶을 때 혼자이고 외로울 땐 함께 할 수 있다. 집이 연대와 소통, 공유의 개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의 작은 방, 사람들과 따듯한 저녁이 그리웠던 작가의 상상력이 그려낸 멋진 이야기!

음식재료의 다양한 색과 맛이 어우러지듯이,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모두 어울려 식사를 한다면 그게 바로 축제가 아닐까?

소윤경 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