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콤비 2015.08.14_한국일보



공멸의 핵전쟁 이후 번식력을 상실한 인간. 동물과 유전자를 섞어 공존하는 생존전략은 차라리 희망적이다. 문학동네 제공


콤비

소윤경 지음 문학동네ㆍ44쪽ㆍ1만8,000원

김장성ㆍ출판인(그림책 작가)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악어랑 하마가 싸우면? 슈퍼맨과 배트맨은? 사내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흔히 듣는 질문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도 그랬다. 숱한 맹수들과, 마징가제트와 태권브이 같은 로봇들을 상상의 콜로세움에 몰아넣었고, 소년잡지에 실린 쌍방 전력분석을 통한 승패 예측 기사를 침을 삼키며 읽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내아이들의 호전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아들만 둘을 키우면서, 되풀이되는 우문에 현답을 구해 보았다. “둘 다 지느니라.” 이긴 놈이라 해도 피투성이일 테니까. 그런데 어느새 머리가 굵어진 작은아들 녀석의 질문이 이렇게 업그레이드됐다. “미국이랑 중국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쯤 되면 혀를 끌끌 차는 수준을 넘어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이른바 강대국들이 전면전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인류의 공멸’이 아닌가?

사내들이 주축을 이루는 인간세계의 권력들은 대량살상무기를 경쟁하듯 늘려왔다. 그 결과 인류는 자신들의 서식지인 지구를 몇 번이나 날려버릴 만큼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누군가 버튼 하나만 잘못 누르면…. 공포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상상이상의 세계를 '그날이 오면'(On The Beach, 1959)에서부터 '매드 맥스'(2015)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영화들이 보여주고 있다. 핵전쟁 이후의 황량한 세상, 그 폐허 위에서 인류의 존속을 모색하는 눈물겨운 노력들. 그러나 거기서도 싸움은 계속된다.

소윤경의 그림책 ‘콤비’도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대전쟁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인류는 황량한 이 행성의 사막섬에서 근근이 살아간다. 피폭으로 번식력마저 잃었기에, 생존을 위해 생명력이 우월한 다른 종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 포유류는 대부분 멸종되었고 남은 것은 곤충과 몇 종의 양서류와 해양생명체들뿐이다. 그 생명체들이 유전자 변형을 거쳐 인간과 비슷한 체격과 지능, 감성을 갖추고 인간의 새로운 가족이자 파트너가 되었다. 인간과 쥐, 도마뱀, 거미, 해파리, 사마귀, 달팽이, 개구리 따위들이 ‘콤비’를 이루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기이한 콤비들이 인간과 인간의 콤비와 똑같이 서로 위하고 다투고 연민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며 그 우울하고 삭막한 세상을 견뎌 가는데, 숱한 전쟁을 겪으며 늙은 종군화가가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낡은 화첩에 그 모습들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그림책이다.

종군화가는 화첩의 마지막 장에 이렇고 적고 있다. “이곳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들이 시작될 것이다. 언젠가 나의 화첩을 펼쳐보게 될 그들에게 부디, 희망이 있길 바란다.”

작가는 작품 속에 자신의 세계관으로 가동되는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이다. 여성 작가 소윤경은 핵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희망의 방도를 모색하다가, 꺼리던 것들과의 ‘콤비’-조합, 결합, 협력-라는 결론을 얻은 모양이다. ‘콤비’는 ‘서로 싸우면?’의 가정법이 아니라 ‘서로 도우면?’의 가정법이다.

그것이 단지 핵겨울에서의 생존법이기만 할까. 지금 당장, 여기에 꼭 필요한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