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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케첩맨 2018.07.27_한국일보


비룡소 제공


케첩맨

스즈키 노리타 지음∙송태욱 옮김

비룡소 발행∙32쪽∙1만원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생계를 위해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청춘들은 흔들린다. 누구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보람되고, 수익이 보장되면서, 안정된 일자리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낮은 시급에, 힘들고, 보람도 없는 데다가 운이 없으면 무례한 고용주의 갑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운 좋게 근사한 직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인생이 그리 반짝거리지만은 않는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한다.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단물까지 모두 빨리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열심히 살아낸 오늘 하루가 다행스럽지만 피곤할 내일이 또다시 걱정스럽다.

표지만 봐도 심상치 않은 수상한 그림책이다. 야채 가게에서 토마토를 신중히 고르고 있는 것은 마치 사람처럼 팔다리가 달린 케첩통이다. 슈퍼맨도 스파이더맨도 배트맨도 아닌 케첩맨. 그는 오늘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몸통 안에 신선한 케첩을 가득 채우고 거리로 나선다. 케첩을 팔아보려고 들어간 감자튀김집에서 그는 뜻하지 않게 감자 튀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일은 만만치가 않다. 주인의 호통소리는 커져가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그럴수록 케첩맨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비룡소 제공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토메이로 박사라고 소개하는 손님이 찾아와 일하던 케첩맨을 가리키며 주인에게 저 케첩을 달라고 한다. 주인은 케첩맨을 불러 케첩을 주문한다. 손님은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 먹으며 매우 흡족해하는데 묘하게도 케첩을 먹을 때마다 붉은 토마토 같은 머리가 조금씩 커져간다. 원하던 케첩을 팔게 되었지만 케첩맨은 얼떨떨하기만 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박사는 케첩을 주문해서 먹었고, 머리가 점점 더 커져서 돌아갔다. 성에 차지 않았던지 박사는 아예 케첩맨의 뚜껑 끝을 물고 통째로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부풀대로 부푼 박사의 머리가 마침내 폭발하고, 케첩은 거리에 홍수처럼 쏟아져 흘러나온다. 온 동네 사람들은 그제서야 케첩을 맛보게 된다. 감자튀김가게는 이제 케첩을 먹기 위해 손님들이 엄청나게 몰려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케첩맨의 일상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더욱더 정신없이 바빠진 것 빼고는.


무엇인가 열심히 한다는 것은 중요한 미덕이지만 때로는 사람을 좌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젊은 날의 에너지와 시간을 고스란히 바친 대가는 마땅히 만족스러워야 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다. 화수분처럼 한없이 솟아날 것만 같던 달콤한 케첩도 언젠가는 말라버리며, 사람들의 입맛도 결국 변덕을 부릴 것이다. 최소한으로 일하고 최대한 놀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가족과 연인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내 케첩 맛이 어떤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매일같이 똑같은 케첩은 그만 짜내도 되지 않을까? 다음엔 식초맨, 겨자맨으로 변할지라도 지치지 않을 만큼 신선한 내용물을 채우고 찰랑대며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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