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제인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2018.04.06_한국일보


책과콩나무 제공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패니 브리트 글∙이자벨 아르스노 그림∙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발행∙100쪽∙1만5,000원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모두 나와 얘기하길 꺼려하고 외톨이 신세가 된다면?’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따돌림 받는 걸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나 학교, 직장, 군대, 심지어 가족… 어느 집단에 있더라도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대놓고 주변에 나쁜 소문을 퍼트리거나 교묘히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사람과 매일 마주쳐야 한다면 감정상태는 물론 생활까지 점점 악화되고 만다.

이 문제는 비단 학창시절에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진다. 위계질서에 복종해야 하는 군대나 직장에서도 한 개인을 향한 괴롭힘은 빈번히 일어난다.

지속적인 집단 따돌림은 피해자 자신이 스스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자책하고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일의 도화선이 되는 ‘왕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 이유 없는 미움은 사람들 사이에서 절대 꺼지지 않는 불씨 같은 것이다. 언제든지 가벼운 입김에도 되살아난다.

헬레네는 어울리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 시작한다. 학교 어디에도 자신을 비웃듯이 쳐다보는 친구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뚱뚱하고 냄새가 난다며 거짓 낙서를 써놓고 헬레나와 놀지 말라고 수근 댄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에 지쳐 있는 엄마에게 고민을 꺼낼 수조차 없다. 헬레네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책을 펼쳐 드는 일이다.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를 읽으며 주인공 제인이 불행과 역경을 이겨 나가는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헬레네의 잿빛현실은 좀체 변하지 않을 것만 같고 ‘제인 에어’의 결말도 비극으로 끝맺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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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간 자연캠프에서도 따돌림은 멈추질 않는다. 같은 처지의 외톨이인 수잔, 루시아와 한 텐트를 쓰게 되지만 어울리고 싶지 않다. 텐트 밖에 앉아 책을 보려는데 숲속에서 붉은 여우가 헬레네에게 조심스레 다가온다.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는 여우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만지려는 순간, 텐트에서 나온 수잔이 고함을 치는 바람에 그마저 달아나 버린다. 헬레네는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듯 절망감에 휩싸인다. 이대로 영영 외톨이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때 한 아이가 불쑥 헬레네의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쾌활한 제랄딘은 주위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헬레나와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제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더 이상 남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 헬레네에게 다시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림을 그린 이사벨 아르스노는 한 권의 책속에 두 개의 세계를 색채로 분리했다. 헬레네가 살아가는 공간과 심리상태는 무채색의 연필로, ‘제인 에어’ 속 풍경은 파스텔 톤의 불투명 수채화로 그렸다. 헬레네가 새 친구를 만나 희망을 가지는 마지막 장면은 무채색에서 밝은 수채화로 변해간다. 이 책은 묵직한 두께의 그래픽 노블, 혹은 장편그림책으로도 볼 수도 있다. 만화적 구성과 회화적인 그림, 문학적인 글이 탄탄하게 짜여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단 한사람, 내 손을 잡아줄 이가 있다면 세상은 외롭지 않다. 그 사람의 온기가 이 고된 삶을 기꺼이 지탱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손을 내밀면 나도 지금 누군가의 간절한 이유가 될 지도 모른다.

그림책 작가 소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