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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임금님의 이사 2017.03.16_한국일보


새로 만든 거대한 침대가 성문에 들어가지도 못하자 임금은 이사를 결정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새 성에 도착한 왕에게 남은 건 예전부터 쓰던 낡은 침대뿐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임금님의 이사

보탄 야스요시 글,그림ㆍ김영순 옮김

문학과지성사 발행ㆍ40쪽ㆍ1만5,000원


새로 만든 거대한 침대가 성문에 들어가지도 못하자 임금은 이사를 결정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새 성에 도착한 왕에게 남은 건 예전부터 쓰던 낡은 침대뿐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봄기운이 차오르니 집안 청소를 하고 해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보지 않는 책들과 입지 않는 옷가지, 내친김에 냉장고 안까지 비우자 살림살이는 한 결 가뿐해진다.

단출한 삶에는 새로운 즐거움들을 위한 여백이 생긴다. 더 나아가서 가진 것을 세상과 나누는 일을 상상해 본다. 왜 어떤 이들은 평생 힘겹게 모은 돈을 선뜻 기부하고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일까?

머나먼 나라에, 착하고 부끄럼 많은 임금과 덤벙대는 친구(신하) 여섯이 성 안에 살고 있다. 친구들이 비좁은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한 임금은 커다란 새 침대를 만들라고 명한다. 친구들은 임금을 위해 터무니없이 거대한 침대를 만든다. 침대는 성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커서 임금은 이사를 결정한다. 수레마다 진귀한 왕실의 물건을 가득 실은 긴 행렬이 새로운 성을 향해 출발한다. 길을 가던 중에 임금의 일행은 야윈 염소들과 비 새는 오두막에 사는 나무꾼 부부, 비에 흠뻑 젖은 남자 아이, 강을 사이에 두고 엄마 사슴과 떨어진 아기 사슴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긴 임금은 친구들에게 “도와주거라” 말한다. 수레 안의 물건들로 기상천외한 해결방법을 짜내는 친구들에게 임금은 그저 미소만 짓는다. 비록 소통은 원활하지 않지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같기 때문이다. 수레에 담은 값진 물건들이 줄어들수록 일행들은 점점 더 행복해져 간다. 우여곡절 끝에 왕의 행렬은 새로운 성에 도착한다. 남은 것은 예전부터 임금이 쓰던 침대뿐이다. 하지만 임금과 친구들은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림은 유럽의 고전적인 화풍을 연상시키는데 장식적이고 아름다운 왕실의 가재도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제라면 이토록 아름다운 물건들을 어떻게 가차 없이 나눠주거나 던져 버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가진 것을 나누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그림책 속 아름다운 이야기만 같다. 임금처럼 재산이라도 있어야 베풀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겨울의 광장에서 세상을 돕고자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들이 모여 봄이 오고 있다. 이제 꽃들이 피기를 기다린다. 이타심이란 결국 스스로에게 내린 축복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책장을 덮는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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