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실제로 탔었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다. 자동차는 아이의 성장 과정과 가족의 삶을 회상한다. 낮은산 제공
열일곱 살 자동차
김혜형 지음ㆍ김효은 그림
낮은산발행ㆍ44쪽ㆍ1만2,000원
작은 집에서 최소한의 물건들로 생활하며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불필요한 물건들은 물론이고, 뒤엉킨 관계들로 심신이 지친 이들은 비움으로써 비로소 여유와 자유가 차오름을 알아간다. 반면, 과연 버리는 게 능사일까 싶기도 하다. 오래 전 용돈을 아껴 샀던 책과 음반들, 처음 마련한 가전제품들, 해외여행의 기념품들…. 이들은 집안 어딘가에서 추억을 소환해줄 타임캡슐이 되어준다.
사는 것이 쉬운 이들에게나 버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닐까? 신중하게 물건을 사고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쓰는 것이 이미 미덕은 아닌 사회지만 말이다.
김혜형 작가가 실제로 탔었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다. 자동차는 아이의 성장 과정과 가족의 삶을 회상한다.
최신형 자동차가 출산을 앞둔 엄마를 안고 병원으로 황급히 달린다.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감탄하며 다시 집으로 조심조심 돌아온다. 아이는 자라서 ‘빠방’ 타기를 좋아한다.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따라 부른다. 자동차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도 가족 캠핑을 가던 날에도 함께였다. 폭우 속에서 엔진에 물이 들어가기도 하고, 뒤차에게 받히기도 하지만 자동차는 가족이 크게 다치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시골로 이사 오게 되자, 더 험하고 궂은일들을 해야 했다. 그래도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자동차는 행복하기만 했다. 아빠는 차가 녹이 스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카센터에 도색을 맡겼는데 숯검댕이 같이 흉하게 변해 버리고 만다. 소음기까지 고장 나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부품이 단종되어 고칠 수 없는 상태다. 아이는 이제 시끄럽고 낡은 차를 타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심지어 시골 길을 달리다 시동이 꺼져버리자 엄마는 폐차를 결심한다. 차를 떠나 보내기 전, 어느새 훌쩍 커버린 꼬마친구가 덤덤히 차에 올라탄다. 계기판의 적힌 32만 3,137㎞라는 숫자. 자동차가 가족과 함께한 거리이자 시간이다. 같은 추억을 가진 두 친구는 이별을 준비한다.
차의 시선으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가족들의 차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림을 그린 김효은 작가는 차가운 쇳덩이에 보드랍고 따뜻한 생명을 불어 넣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시간을 함께 나누었던 것이 비단 자동차뿐이겠는가. 반려동물,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 돌아가신 조부모님…. 이젠 사라지고 없는 존재들이다.
‘슬퍼하지 마. 사람이나 자동차나 끝없이 달릴 수는 없잖아.’
이제 막 청춘을 시작하는 푸르른 소년에게 건네는 자동차의 이별의 말이 의연하다. 비록 숯검댕이 자동차가 형태는 바뀌어도 세상 어딘가에서 다른 물건으로 살아갈 것이라 슬픔을 달래본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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