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감기 걸린 물고기 2016.09.23_한국일보


감기에 걸렸다는 소문 때문에 빨강 물고기는 무리에서 쫓겨나 아귀에게 먹힌다. 다음은 노랑, 다음은 파랑 물고기 차례다. 사계절 제공


감기 걸린 물고기

박정섭 글ㆍ그림

사계절 발행ㆍ56쪽ㆍ1만3,500원

바다 속, 알록달록한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 몸집이 상대적으로 더 커다란 천적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반면, 배고픈 아귀는 이 영리한 사냥감들의 무리를 흩어지게 할 묘책을 궁리 중이다. 아귀가 꾀를 낸다. 물고기 무리를 쫓아가면서 빨강 물고기들이 감기에 걸렸다고 소리친다. 황당무계한 소문에 물고기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감기를 옮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성된다.

빨간 물고기들이 원래부터 자신들은 빨갰다고 항변하지만 무리에서 쫓겨난다. 아귀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빨간 물고기들을 날름 잡아먹는다. 아귀가 이번에는 노란 물고기도 감기에 옮았다고 한다. 노란 콧물 색이 감기 걸린 증거라는 것이다. 노란 물고기들도 무리에서 쫓겨나 아귀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연이어 파란물고기들까지도. 그때서야 한 물고기가 이 소문의 진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머지 물고기들은 안타깝게도 두 편으로 분열되어 서로 싸워댄다. 아귀는 유유히 나머지 물고기들을 덥석 삼켜버린다.

박정섭 작가의 ‘감기 걸린 물고기’는 유쾌한 이야기 같지만 책을 덮고 나면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그림책이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정치, 사회적 사안들이 이슈화 될 때마다 어김없이 연예인의 스캔들이 터지곤 한다. 사실 여부는 상관없다. 매스미디어는 진실보다 현상에 초점을 맞춰 스캔들을 퍼트린다. 개인 SNS를 통해 스캔들은 더욱 과열된다. 이쯤 되면 신상 털기와 유언비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스캔들의 주인공은 변변한 대응도 못한 채 다수의 분노 앞에 고개를 숙인다.

사람들은 항상 마녀사냥처럼 집단분노의 대상들을 찾아왔다. 결국 중대한 정치적 사안들의 주인공들은 위기를 모면하고, 마녀가 된 사람들은 다수의 분노가 사그라질 때까지 엎드려 지내야 한다. 결코 연예인들만이 희생양은 아닐 것이다. 감기에 걸려버린 사회의 사람들은 누구나 배고픈 아귀의 뱃속으로 들어갈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