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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bi
Munhakdongne. 2015

​​콤비

이 책은 내 일과 생활의 콤비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살아오면서 만난 나의 콤비들에게 바친다.

_소윤경

회화풍과 일러스트레이션의 포옹
인간의 위선과 문명 비판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화가 소윤경이 신작 『콤비 Combi』를 내놓았다. 인간 탐욕과 폭력성의 집약체인 식탁을 그려낸 『레스토랑 Sal』이 구제역 파동이 있던 시기에 구상한 것이라면 『콤비 Combi』는 세월호 사태와 팔레스타인 분쟁 등 죽음으로 얼룩진 시간이 녹아들어, 연대와 공존을 도모한다. “스타일로만 기억되기보다 철학을 가진 작업으로 소통할 수 있”(『오늘의 일러스트』중에서)기를 바라는 화가의 끊임없는 모색은 그만의 강렬한 이미지와 융합해 화가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 위에 회화작가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느끼는 충돌, 열망이 완성시킨 이 그림책은, 두 세계의 경계에서 찾은 새로운 정체성, 또는 탈경계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3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의 주제 아래 14컷의 독립된 에피소드가 놓여 있는 연작화첩 형태의 그림책이다. 관찰자가 써내려간 관찰 대상들의 기록, 관찰 대상들이 직접 들려주는 연대에 대한 이야기 『콤비 Combi』의 색다른 시도는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대전쟁 이후 죽음을 딛고 선 인류와 비인류
사막의 밤하늘을 스치는 유성처럼 피었다가 사라진 그들의 기록

#1 요요와 달이에 관한 기록: 커다란 문어가 소녀에게 업혀 있다. 소녀는 해저 탐험을 마친 뒤 해초주스로 목을 축이고 있다. 둘은 함께 바다로 내려가 과거의 잔해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건져오는 일을 하고 있다.

#2 수지와 게르에 관한 기록: 늙은 도마뱀이 딴생각에 빠진 소녀의 긴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젊은 시절 전투에서 다리를 잃은 도마뱀 게르는 갓 태어난 수지를 분양받아 와 딸처럼 기르고 있다. 사춘기를 맞은 수지는 게르의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보는 것이 싫다.

#3 노아와 지후에 관한 기록: 보초병 소년이 거북이 등갑을 입고 지쳐 잠들어 있다. 마치 꿈을 꾸고 있거나 거북이 노아의 둥글고 단단한 등을 추억하는 듯 보인다. 노아는 전쟁 중 죽음을 맞았다. 노아는 지후의 아빠이기도 엄마이기도 친구이기도 한 존재였다. 주름진 노아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지후는 언제나 노아와 함께라는 걸 느낀다.

이 글과 그림은 기나긴 전쟁 끝에 남겨진 기록이다. 오랜 여행의 종착지이자 유토피아 <몽유도원>에 도착한 “몽”은 전쟁 속에서 직접 그리고 써내려간 병사들에 관한 기록을 펼쳐본다. 그에겐 그의 화첩을 펼쳐볼 이들에게 전할 말이 남아 있다.
오래전 행성은 메마른 폐허가 되었고, 바닥난 식량과 자원, 더 나은 생존조건을 위한 싸움은 모든 생물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지난 시절의 물질적 풍요는 바다 밑 잔해로 남았고, 대부분의 생물종은 멸종했다. 얼마 안 남은 인류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종을 창조한다. 인간과 비슷한 체격, 지능, 감성을 갖춘 박쥐, 거북, 도마뱀, 사마귀 등 비인류는 인간의 반려자가 되어 하나의 가족을 이룬다. 이들 콤비는 마지막 보금자리인 사막섬에 성벽을 두르고 매일같이 일어나는 전쟁을 피부로 느끼며 하루하루를 이어 나간다. 서로 보살피고 의지하고 교감하면서.

파멸한 세계에서도 굳건한 성채, 생명 연대와 희망

“시골로 이사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13년 동안 키운 거북이가 집을 기어서 나갔다. 나는 지금 도 그 녀석을 생각한다. 등껍질의 질감과 메마른 피부와 초월한 듯한 눈빛을 나는 잘 그려낼 수 있다.”

화가 소윤경이 화폭에 불러온 이미지는 비현실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이며 작가가 체험에서 길어 올린 한 장면이다. 쥐와 박쥐, 개구리는 화가와 함께 살고 있는 개와의 다채로운 교감에, 도마뱀 게르는 외할머니와의 추억에 빚지고 있다. 화가는 시골에 살기 시작하면서 작은 생명들의 당찬 삶과 처연한 죽음이 일상처럼 가깝게 느껴졌다고 한다. 바싹 말라 죽은 아주 작은 곤충은 전지 사이즈의 커다란 화폭 안에서 이미지로 확장되어 나아갔다. 여기 담긴 에피소드들은 부모, 친구, 애인뿐만 아니라 작가의 한 세계를 이룬 반려동물, 마당에서 만난 곤충과 집 안팎의 자연 그 모든 것과의 관계를 모태로 했다. 그래서 먼 미래의 시공간 속, 연약한 인간들과 그들의 콤비인 비인류의 모습은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환상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되비추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을 생각하게 한다. 14가지 관계에 관한 소윤경의 이번 발언은 그림책 『레스토랑 Sal』에서도 만난 적 있는 소윤경 작품의 근원적 힘이며 작가가 세상과 맺는 태도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을까. 타자는 자기와 분리될 수밖에 없을까. 실존의 비애와 생명에의 경외,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담은 『콤비 Combi』는 그 해답의 일부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도 사랑이나 집착, 애증과 질투 등의 다양한 감정들이 만들어집니다. 인간이 가지지 못한 육체적 능력을 가진 새로운 콤비들의 등장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내러티브는 인간들만의 관계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변치 않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식으로 최후까지 삶과 죽음을 함께합니다.”

원작의 희소성과 복제미술의 대중적 가치에 고심해 온 오랜 결과물

“회화와 출판미술에서 활동하며 원작의 희소성과 복제미술의 대중적 가치에 고심해 온 오랜 결과물입니다. 전시와 책,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가 상호적인 콤비를 이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콤비 Combi』 드로잉 연작은, 책상에 앉아서가 아닌 나무 판넬에 종이를 붙이고 서서 그리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지금까지 출판미술가로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에 그리던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종이의 최대 사이즈인 전지에 콩테와 목탄, 연필로 드로잉하고 잉크와 색연필로 부분 채색하여 풍부한 톤을 끌어냈다. 내면의 이야기를 한 장 한 장 마음껏 이미지화한 뒤 어두운 동굴을 헤쳐 나가는 기분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말랑한 글과 섬세한 그림 그리고 웃음을 주기도 하고 각 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는 ‘기록’의 조합이 너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감정을 끌어간다. 작품 속 글과 그림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한 “몽”은 곧 작가 소윤경 자신인 셈이다. 회화와 출판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작가’로 선 소윤경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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